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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한씨 문익공파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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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한씨 문익공파 묘역 사진

청주한씨 문익공파 묘역

지정번호
경기도 기념물 제163호

지정일자
1997년 5월 16일

소재지
거모동 산62-4

시대
묘 - 인조 5년(1627), 신도비 - 인조 7년(1629)

소유자
청주한씨 문익공파 종중

관리자
청주한씨 문익공파 종중

한준겸(韓浚謙, 1557~1627)은 조선 중기에 호조판서를 거쳐 인조의 장인으로 서평 부원군에 봉해졌다. 이 묘역은 한준겸의 묘를 중심으로, 그의 아들 한회일(韓會一, 1589~1642 한성좌윤) 묘와 우측에 손자 한이성(韓以成, 1602~1634) 묘, 그리고 바로 앞쪽에 증손인 한두상(韓斗相, 1627~1687 돈령부 판관) 묘가 함께 조성된 4대에 걸친 묘역이다. 한준겸의 시호가 문익(文翼)이므로 그의 후손들을 문익공파라고 칭한다.

한준겸 묘는 회산부 부인 황씨와 합장이며 석물은 묘표ㆍ장명등ㆍ상석ㆍ향로석ㆍ혼유석 각 1기, 문인석, 망주석, 동자석 각 1쌍이 있다. 묘표는 월두형(月頭形)의 비신(碑身)과 기대(基臺)로 이루어졌고 인조 6년(1628)에 건립되었다. 한회일 묘는 정부인 전주 이씨와 합장이며, 석물은 묘표ㆍ상석ㆍ향로석 각 1기와 문인석 1쌍이 있다. 인조 23년(1645)에 세운 묘표의 비문은 신익성이 짓고 글씨는 오준이 썼다. 한이성 묘는 유인(孺人) 죽산 안씨와 합장이며, 석물은 묘표ㆍ상석ㆍ향로석 각 1기, 동자석ㆍ망주석 각 1쌍이 있다. 문인석을 사용하지 않고 거대한 동자석을 사용한 것은 공이 벼슬을 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묘표는 숙종 27년(1701)에 세운 것으로 비문의 글씨는 한종노가 썼다. 한두상 묘는 숙인(淑人) 양주 조씨와 합장이며, 석물은 묘표ㆍ상석ㆍ향로석 각 1기, 문인석ㆍ망주석 각 1쌍이 있다. 묘표의 비문은 이봉휘가 짓고 글씨는 한종노가 썼다.

한준겸의 신도비는 인조 7년(1629)에 세운 것인데, 총높이 3.35m로 장대한 귀부에 푸른 빛이 감도는 대리석 비신과 생동감이 넘치는 이수의 조각, 안정감 있는 비례감각 등 조선 전기의 양식에 따라 조성한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신도비는 묘역의 이장 이후 효종 3년(1652)에 효종이 내탕금을 내어 신도비를 중건하고 그 전말을 비문의 끝부분에 새겨 놓았는데 이정구가 짓고 글씨는 오준이 썼으며, 전자(篆字)는 김상용이 하였다. 이 신도비는 한준겸의 묘역에서 동남쪽으로 약 200여 m 떨어져 있었으나 영동고속도로의 건설로 인해 1994년에 현 위치로 옮겨져 왔으며 이때 비각을 세웠다.

청주한씨 문익공파 묘역 오시는 길

시내버스

1ㆍ25ㆍ30-3ㆍ76
동보아파트 하차, 동쪽으로 15분
(군자영업소 서북)

문의

(031) 310-6706 (향토사료실)
(031) 310-6708 (문화재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