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이트맵

포동 새우개 당제

home Home 화살표 시흥시의 문화유산 화살표 무형 문화유산 화살표 포동 새우개 당제

포동 새우개 당제 사진

포동 새우개 당제

소재지
포동 새우개마을

시대
고려 말(추정)

포동은 전통시대로부터 광복 이후에 이르기까지 시흥 지역 어업활동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곳으로 포동의 새우개 당제의 제의(祭儀) 성격은 마을의 풍어(豊漁)와 안녕, 주민들의 건강을 비는 마을 제사이다. 제사는 일년에 두 차례, 음력 정월 초와 7월 초에 지냈는데 당집에 모신 신령을 소당아가씨라 하고 제사 때마다 바느질 도구, 빗등 여성용품을 새로 장만하여 올리는데, 이 역시 다른 바닷가 마을에서 여성을 신(神)으로 모시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7월 당제는 우물 고사가 수반되어 농업에 있어서 한 해 추수에 감사하고 이듬 해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도 함께 담겨 있었다. 즉, 마을의 당제는 주민들의 생업에 밀접히 연결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정월 당제의 경우 어업에, 7월 당제의 경우 농업에 보다 큰 비중이 있었을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포동 새우개 당제에서 또 하나 주목할 만한 것은 일제강점기의 당제 관련 문서가 남아있다는 것이다. 이들 자료는 1970년 후반에 일부 알려졌다가 그대로 잊혀졌었는데, 2005년 당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중에서도 1923년 당제때 소요된 제수 및 비용을 순서대로 적은 「대정12년음정월초삼일 당사시 소용기(大正十二年陰正月初三日 당?시쇼용긔)」는 조선시대 포동 당제의 원형을 짐작케 한다는 점에서 특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1923년의 기록은 그 이전부터 전해 내려오던 형식대로 적어 놓은 것이고, 그렇게 볼 경우 1923년의 제의순서는 사실상 조선시대의 것과 같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과거 시흥 지역의 민속이 어떠한 형태를 띠고 있었는지 살펴볼 수 있는 긴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이밖에도 1930년 포리(浦里) 및 국동(局洞)의 당제 참여호의 숫자 및 호당 추렴 액수, 총수입 및 지출 비용, 도당제의 직임등을 기록한「경오정월초삼일도당신사시용하기(庚午正月初三日禱堂神祠時用下記)」, 1930년 당시의 포리(浦里) 및 국동(局洞)의 전 호수를 기록하여, 각 가호가 도당제에 어떠한 역할을 맡았는지를 알 수 있는 「소화오년경오음정월 일 포리호수씨명절목(昭和五年庚午陰正月 日浦里戶數氏名節目)」등도 일제강점기 포동의 당제와 생활모습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들이다. 또 1933년에 포리에서 혼상계(婚喪? : 혼인와 장례때 상호 부조하기 위한 계모임)를 조직하면서 발의한 내용과 절목(節目) 및 계원 명단을 수록한 「입의론(立儀論)」도 마을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한편, 포동 새우개 당제는 그 제의과정의 일부로서 정월 당제에 앞서 포동의 동편마을과 서편마을에 장승을 세우는 절차가 진행되었는데, 이 과정이 각색되어 ‘새우개 장승놀이’라는 이름으로 놀이화된 적이 있다.

포동 새우개 당제는 시흥의 대표적 어촌의 하나였던 포동의 역사와 전통민속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과거 염전건설로 인한 간척과 1959년의 포리호 사건등이 겹쳐 어업과 농업이라는 이 마을 주민들의 주된 생업 기반이 쇠퇴ㆍ변화하면서 점차 부정기적으로 개최되는 등 지역 내에서 당제가 차지하는 위상도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당제의 부침(浮沈)은 시흥 지역에 있어서 현대의 도시사회 발달과 전통의 마을민속과의 상관관계와 생명력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