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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인 선생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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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인 선생 묘 사진

김치인 선생 묘

지정번호
향토유적 제1호

지정일자
1986년 3월 3일

소재지
안현동 360-6

시대
묘 및 묘갈 - 정조 14년(1790)

소유자
청풍김씨 종중

관리자
청풍김씨 종중

김치인(金致仁, 1715~1790)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자는 공서(公恕), 호는 고정(古亭), 본관은 청풍(淸風)이다. 영의정을 지냈던 김재로(金在魯, 1682~1759)의 아들로 영조 24년(1748) 춘당대시(春塘臺試) 갑과(甲科)에 장원하여 예문관 전적, 좌승지를 거쳐 1762년 이조판서에 올랐으며 1766년 영의정을 지냈다. 당파를 조성했다 하여 영조 48년(1772) 직산현(稷山縣)에 유배되었다가 반년만에 풀려나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로 기용되었으며, 1776년 정조가 즉위하자 고부겸승습주청사(告訃兼承襲奏請使)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다. 1785년(정조 9)에는 『대전통편(大典通編)』편찬을 주관하였으며, 편저로는 『명의록(明義錄)』과 『열성지장통기(列聖誌狀通記)』가 있다. 시호는 헌숙(憲肅)이다.

묘는 안현동 길마재 마을에 있는데, 정경부인(貞敬夫人) 완산 이씨(完山李氏)ㆍ달성 서씨(達城徐氏)ㆍ광주 이씨(廣州李氏)의 세 부인과의 합장이다. 첫 부인 완산 이씨는 묘 오른쪽에, 둘째 부인 달성 서씨는 왼쪽에, 셋째 부인 광주 이씨는 그의 묘 앞쪽에 각각 합장되었다. 묘역에는 호석(護石)을 두른 봉분을 중심으로 왼쪽에 묘갈이 있고, 한 단 중앙에는 상석과 향로석이 자리잡고 있으며, 좌우에 망주석과 석양(石羊) 한 쌍이 서 있다.

묘 왼쪽에 있는 묘갈은 정조 14년(1790) 5월 20일에 세운 것으로 비신은 높이가 1.61m, 폭 68cm, 두께 37cm이며 비문은 조돈(趙暾, 1716~1790 이조판서)이 짓고 아울러 글씨를 썼으며, 전면 글씨는 그의 형 김치일(金致一, 장락원 정)의 아들 김종순(金鍾純, 1750~1802 부정자)이 썼다. 또 지문(誌文)은 종형(從兄) 김치만(金致萬)의 아들 김종수(金鍾秀, 1728~1799 좌의정)가 썼다. 신도비는 묘에서 약 20m 떨어진 곳에 있었으나, 묘역 내에 있던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ㆍ문인석(文人石)ㆍ장명등(長名燈)ㆍ하마비(下馬碑) 등과 함께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반출해 갔다고 전해진다. 재실과 연못은 가문의 쇠퇴에 따른 관리 소홀로 그 흔적조차 없이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김치인 선생 묘 오시는 길

시내버스

31-7ㆍ38_길마재마을 입구 하차, 서남쪽으로 5분
(길마재마을)

문의

(031) 310-6706 (향토사료실)
(031) 310-6708 (문화재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