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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응대군 묘 및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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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응대군 묘 및 신도비 사진

영응대군 묘 및 신도비

지정번호
향토유적 제9호

지정일자
1988년 5월 31일

소재지
군자동 산70

시대
묘-세조13년(1467), 신도비-연산군 4년(1498)

소유자
전주이씨 영응대군파 종회

관리자
전주이씨 영응대군파 종회

영응대군(永膺大君, 1434~1467)은 세종대왕의 8남으로 어머니는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沈氏)이며, 자는 명지(明之), 호는 서곡(西谷), 이름은 염(琰)이다. 세종 23년(1441)에 영흥대군(永興大君), 세종 25년(1443)에 역양대군(歷陽大君), 세종 29년(1447)에 영응대군(永膺大君)으로 개봉되었다. 서화에 재능이 있었고, 특히 음률(音律)에 조예가 깊어 『명황계감(明皇誡鑑)』의 가사를 번역하였다. 성품이 순후(醇厚)하고 총명하였으며, 세종이 승하하실 때 영응대군의 거처인 동별궁에 옮겨와 돌아가실 정도로 세종의 총애가 깊었다.

광무 4년(1900) 9월 17일에 대군의 첫 부인 춘성부부인(春城府夫人) 해주 정씨(海州鄭氏)와 둘째 부인 대방부부인(帶方府夫人) 여산 송씨(礪山宋氏)의 묘를 현 위치로 천장한 후, 1968년에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에 있던 셋째부인 연성부부인(延城府夫人) 연안 김씨(延安金氏) 및 아들 청풍군(靑風君)과 손 화림정(花林正), 그리고 증손 흥선부정(興善副正), 흥정부수(興貞副守)의 묘를 옮겨 봉안하였다. 묘는 대군과 해주 정씨 및 여산 송씨와 합장이고 그 왼쪽에 연안 김씨의 묘가 자리잡았으며, 두 묘 가운데 앞에는 묘비와 상석, 향로석, 장명등이, 그리고 그 좌우에는 망주석과 문인석이 배치되어 있다.

신도비는 연산군 4년(1498)에 세운 것으로 묘에서 동남쪽으로 약 50m 떨어져 있는데, 기단석 대신에 귀부 위에다 비신을 세웠고, 다시 그 위에 옥개석 대신에 이수를 얹었다. 비신의 규모는 높이 1.45m, 폭 84cm, 두께 21cm이고, 비면에는 『永膺大君 神道碑(영응대군 신도비)』란 전제(篆題)와 『有明朝鮮國 永膺大君諡敬孝公神道碑銘(유명조선국 영응대군시경호공신도비명)』이란 비제(碑題)가 새겨져 있다. 비문은 도승지 임사홍(任士洪)이 짓고 아울러 전액(篆額)했으며, 글씨는 용양위부사정 박경(朴耕)이 썼다. 묘 입구에는 대군의 시호명을 취한 재실(경효재, 1969년경 건립)과 사당(경효사, 1997년 건립)이 각각 위치해 있으며, 2008년 홍살문을 세웠다.

영응대군 묘 및 신도비 오시는 길

시내버스

25ㆍ30-7ㆍ61
구지정 아랫말 하차, 동쪽으로 5분
(경효재 동북)

문의

(031) 310-6706 (향토사료실)
(031) 310-6708 (문화재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