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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명 효자정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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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명 효자정각 사진

하우명 효자정각

지정번호
향토유적 제11호

지정일자
1988년 5월 31일

소재지
신천동 422

시대
조선시대

소유자
진양하씨 문효공파 중앙종친회

관리자
진양하씨 문효공파 중앙종친회

조선 전기의 효자 하우명(河友明, 1413~1493)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정각(旌閣)이다. 선생의 호는 연당(蓮塘), 본관은 진주(晉州)로 서울 돈화문 밖에서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하연(河演, 1376~1453)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를 지극한 효성으로 모셨는데, 아침 저녁으로 항상 손수 조리한 찬(饌)으로만 상(床)을 올렸으며, 선생의 어머니 또한 아들이 직접 조리하지 않았을 때는 음식을 들지 않았다고 한다. 마침내 어머니가 병환으로 세상을 떠나자 선생은 너무나 애통하고 상심하여 몸을 돌보지 않았고 초췌하기 그지 없었으나, 제수(祭需)는 반드시 손수 마련하였으며, 땔나무나 물 깃는 일도 몸소 하는 등 정성을 다해 제사를 받들었다고 한다. 3년 동안의 시묘(侍墓) 살이를 마친 후에도 어머니를 추모하는 마음이 지극하여 영당(影堂)을 세우고 철따라 나는 새로운 제수를 마련하여 제사를 모셨다. 기제(忌祭) 때는 "우리 어머님께서는 평소에 자식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가장 즐거워하셨다."고 하면서 먼저 죽은 형제자매의 신위(神位)를 나란히 배치하여 제사를 지냈다.

벼슬에 뜻이 없어 세조가 두 번씩이나 도진무절제사(都鎭撫節制使)에 등용코자 하였으나 신병을 이유로 사양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성종 4년(1473) 지방관이 그의 효행을 상신하자 나라에서 정각을 세우고 호역(戶役)을 면해 주었다. 정각은 맞배지붕에 한식기와를 얹은 정면 한 칸, 측면 한 칸의 방풍판(防風板)이 달린 목조건물이며, 정려비(旌閭碑)는 높이 1.27m, 폭 61cm, 두께 22cm의 규모이다. 이 비각은 1700년대에 처음 세워진 후, 후대에 내려오면서 수차에 걸쳐 중수(重修) 하였으나 관리 소홀과 비바람 등으로 인해 원형을 잃어가자 1988년에 전면 보수하였다. 이어 1997년에 담장을 설치하였고, 2008년 다시 정각을 보수하였다. 1995년 정각 입구에 조선 성종조에 좌찬성을 지냈던 강희맹이 찬(撰)한 ‘소래하중추정문기(蘇萊河中樞旌門記)’를 비석에 옮겨 세웠다.

하우명 효자정각 오시는 길

시외버스

2ㆍ3ㆍ8_신천동 하차, 서북쪽으로 5분

시내버스 외

1ㆍ31-3ㆍ31-5ㆍ31-7ㆍ31-9ㆍ38ㆍ61
신천동 하차, 서북쪽으로 5분
(계란마을)

마을버스 외

1_소래주유소 하차, 서쪽으로 5분

문의

(031) 310-6706 (향토사료실)
(031) 310-6708 (문화재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