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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용 장군 묘 및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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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용 장군 묘 및 신도비 사진

김준용 장군 묘 및 신도비

지정번호
향토유적 제13호

지정일자
1988년 5월 31일

소재지
군자동 산138-1

시대
묘-인조 20년(1642), 신도비-숙종 11년(1685)

소유자
원주김씨 종중

관리자
원주김씨 종중

김준용(金俊龍, 1586~1642) 장군은 조선중기의 무신으로 자는 수부(秀夫), 본관은 원주(原州)이다. 선조 41년(1607)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었고, 광해군 9년(1617) 인동도호부사, 영주군수를 거쳐 인조 14년(1636) 전라도병마절도사를 역임하였다. 같은 해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관할 군사를 이끌고 적에게 포위당한 남한산성으로 진군하면서 곳곳에서 군사를 모아 병력을 보강하였다. 직산(稷山)을 경유, 용인의 광교산(光敎山)에 이르러 험준한 산세를 이용, 포진하였다가 공경(孔耿)의 청나라 군대 수만이 공격해오자 청태조의 부마 백양고라(白羊高羅) 등 많은 적병을 사살하는 전공을 올렸다. 이후 김해도호부사, 경상도병마절도사 등을 역임하였다. 시호는 충양(忠襄)이다.

묘는 본래 서울특별시 강서구 화곡동에 있었으나 도시화계획에 의해 1972년에 현 위치로 이장하였다. 묘역에는 봉분을 중심으로 봉분 앞에 상석, 향로석이 있고, 좌우에 동자석(童子石) 한 쌍이 서 있다. 이 동자석은 머리에 관(冠)을 쓰고 있지 않아 문신석인이라 할 수는 없으나 도포를 입고 홀을 쥐고 있는 모양은 문신석인과 꼭 같다. 한 단 아래에 문신석인이 좌우에 서 있다.

신도비는 숙종 11년(1685)에 건립한 것으로 묘소에서 서쪽으로 약 80m 떨어진 노변에 위치하고 있는데, 두 단의 기단석 위에 비신을 세우고 그 위에 옥개석(屋蓋石)을 얹었다. 첫 번째 기단석은 땅속에 묻혀 있어 정확한 규모를 알 수가 없고, 두 번째 기단석은 높이 1.03m, 폭 72cm, 두께 48cm이며, 전면에 운문(雲文)과 연판문(蓮辦文)을 정교하게 새겨놓아 세심하게 제작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비신은 오석(烏石)으로 높이 1.4m, 폭 65cm, 두께 22cm의 규모이며 옥개석은 팔작지붕 양식이다. 비문은 우의정 허목(許穆)이 짓고 글씨와 전자(篆字)는 이조참판 오시복(吳始復)이 썼다.

한편 수원 광교산(위치, 수원시 하광교동 산 1-1)에 경기도 기념물 제38호인 「김준용 장군 전승지 및 비」가 있다. 전언(傳言)에 의하면, 정조(正祖) 때 화성 축성에 필요한 석재를 구하러 광교산에 간 사람들에게서 병자호란 때(1636) 수원 광교산 전투에서 큰 공훈을 세운 장군의 얘기를 들은 축성 책임자 채제공(蔡濟恭)이 그 사실을 새기게 했다고 한다. 암반을 갈아 '충양공김준룡장군전승지(忠襄公金俊龍將軍戰勝地)'라 새기고, 그 좌우에 '병자호란공제호남병근왕지차살청삼대장(丙子胡亂公提湖南兵勤王至此殺淸三大將)'이라는 전승 내용을 새겨놓았다.

김준용 장군 묘 및 신도비 오시는 길

시내버스

25ㆍ30-7ㆍ61
구지정 아랫말 하차, 동쪽으로 5분
(황고개와 큰말 사이)

문의

(031) 310-6706 (향토사료실)
(031) 310-6708 (문화재담당)